도갑사 해탈문에서의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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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11 10:14:29
조선 12대왕 인종(1515~1545)은 재위 8개월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의 이복동생 명종(1534~1567)이 12세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1501~1565)는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인종 추종세력들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이후 6년간 사림을 귀양 또는 사형으로 몰살시킨 이 사건을 을사사화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고, 인종의 죽음의 원인은 문정왕후가 준 독이 든 떡이라고 야사는 전하고 있다.
이런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던 인종비 인성왕후(1514~1578)가 문정왕후에게서 어떤 수모를 당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을사사화가 진행 중이던 1550년, 인성왕후는 남편이 정토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라며 ‘관세음보살32응신도’를 제작, 월출산 도갑사 금당에 안치시켰다. 몽유도원도와 함께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이 불화(佛畵)는 아쉽게도 현재 일본 교토 지은원에 소장돼 있다.
도갑사에 관한 기록이 그 이전의 조선왕조실록에도 있다. 세조 10년(1464) 수미왕사(守眉王師)가 중건했다는 내용이 세조 33권에 기록돼 있어, 절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입구의 산문(山門)인 해탈문은 1960년 해체·수리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조선 성종4년(1473)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1962년 국보 제50호로 지정되었다. 1977년 신도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해 도갑사 거의 모두가 소실되었는데 해탈문은 화를 면했다.
소방시설 조사차 들른 10월 31일, 고개를 들어 지붕을 받고 있는 내부 구조를 보니 국보로서의 품격이 절로 느껴진다. 여느 문화재와 마찬가지로 내·외부의 불꽃감지기·연기감지기·CCTV가 국보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관리사무소의 CCTV 모니터는 고장 나 꺼져 있는 게 아닌가? 문화재청의 업무계획에는 전문기관의 합동점검을 연 4회 실시한다고 되어 있는데 갑자기 찾아온 고장은 아닌 것으로 보였고, 제2의 불화 도난사건이 일어나도 속수무책일 것 같아 안타까웠다. 관리가 이렇게 허술하다니.
안타까운 것이 또 있었다. 화재 시 소화는 소방차가 도착하기까지는 방수총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일반인들이 방수총을 알 리 없다. 소방서 또한 가까운 곳에 있지 않다. 소방관계인이라 할지라도 경보음을 듣고 방수총 있는 곳으로 달려가 두껑을 열기도 전에 전소(全燒)할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적어도 국보만큼은 관리사무소는 물론 인근 지자체를 포함하여 최소한 2곳 이상의 유관기관에서 모니터닝 할 수 있는 방범시스템과 화재 발생과 함께 바로 작동되는 수막설비 소화시스템 정도는 도입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글 이준영(3학년)·사진 민정현(1학년)]
이런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던 인종비 인성왕후(1514~1578)가 문정왕후에게서 어떤 수모를 당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을사사화가 진행 중이던 1550년, 인성왕후는 남편이 정토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라며 ‘관세음보살32응신도’를 제작, 월출산 도갑사 금당에 안치시켰다. 몽유도원도와 함께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이 불화(佛畵)는 아쉽게도 현재 일본 교토 지은원에 소장돼 있다.
도갑사에 관한 기록이 그 이전의 조선왕조실록에도 있다. 세조 10년(1464) 수미왕사(守眉王師)가 중건했다는 내용이 세조 33권에 기록돼 있어, 절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입구의 산문(山門)인 해탈문은 1960년 해체·수리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조선 성종4년(1473)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1962년 국보 제50호로 지정되었다. 1977년 신도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해 도갑사 거의 모두가 소실되었는데 해탈문은 화를 면했다.
소방시설 조사차 들른 10월 31일, 고개를 들어 지붕을 받고 있는 내부 구조를 보니 국보로서의 품격이 절로 느껴진다. 여느 문화재와 마찬가지로 내·외부의 불꽃감지기·연기감지기·CCTV가 국보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관리사무소의 CCTV 모니터는 고장 나 꺼져 있는 게 아닌가? 문화재청의 업무계획에는 전문기관의 합동점검을 연 4회 실시한다고 되어 있는데 갑자기 찾아온 고장은 아닌 것으로 보였고, 제2의 불화 도난사건이 일어나도 속수무책일 것 같아 안타까웠다. 관리가 이렇게 허술하다니.
안타까운 것이 또 있었다. 화재 시 소화는 소방차가 도착하기까지는 방수총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일반인들이 방수총을 알 리 없다. 소방서 또한 가까운 곳에 있지 않다. 소방관계인이라 할지라도 경보음을 듣고 방수총 있는 곳으로 달려가 두껑을 열기도 전에 전소(全燒)할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적어도 국보만큼은 관리사무소는 물론 인근 지자체를 포함하여 최소한 2곳 이상의 유관기관에서 모니터닝 할 수 있는 방범시스템과 화재 발생과 함께 바로 작동되는 수막설비 소화시스템 정도는 도입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글 이준영(3학년)·사진 민정현(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