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미륵전과 소방방재 학도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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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2 10:07:53
모악산 기슭에 자리 잡은 금산사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불탄 후 선조 34년(1601)부터 인조 13년(1635)까지 복원공사로 재건되었다. 영조 24년(1748)에 지붕의 수리가 있었고, 1988년부터 약 5년에 걸쳐 완전 해체·수리가 있었다. 1962년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었다. 외관은 탑 모양의 3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층의 구분 없이 한 공간으로 되어 있다. 그 공간에 높이 11.82m의 미륵불이 좌우에 8.79m의 보살을 거느리고 서 있다.
순천향대 교수였던 양상현은 1910년 이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전 사진을 2014년 12월 13일자 불교신문에 소개한 바 있다. 건물 앞에는 나무들이 있고 좌우에는 전각이 있어 앞은 물론 좌우도 확 트여있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1918년 발행된 미국의 인류학자 Frederick Starr(1858~1933)의 저서 Korean Buddhism에 실린 미륵전의 사진은 추녀를 받치는 기둥이 없는 점만 지금과 다를 뿐 나머지는 동일하다.
현재의 불상은 이전의 불상이 1935년 3월 화재로 소실된 이후 조각가 김복진(1901~1940)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전의 불상 사진은 Korean Buddhism에 실려 있는데, 세 불상의 높이가 비슷하다. 이 불상에 관해 1928년 7월 11일자 동아일보는 ‘불상은 고대예술의 정화(精華)’라고 극찬하고 있는 반면 현재의 불상에 대해서는 수작이라는 평가와 범작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소방시설 조사로 찾은 11월 22일은 유난히도 맑은 날씨였다. 고개를 뒤젖혀 쳐다보니 미륵불이 3층의 광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환한 미소로 필자를 반기고 있었다. 건물에 사용된 모든 부재가 하나의 조각품으로 연결돼 공간을 형성하며 불상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필자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400여 년 전, 이렇다 할 목공 장비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저런 조화를 이뤄 냈을까.
반면, 불과 몇 년전에 설치한 내부의 CCTV·감지기 등은 너즈분하게 메달려 조화를 허뜨리고 있었다. 외부의 CCTV·감지기는 1층 처마에만 설치되어 감시체계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외부에서 불씨가 날아와 2층 벽이 연소하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종무소의 CCTV 모니터는 오래되고 해상도도 낮아 화면 속 물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식별하기 어려워 보였다.
하루빨리 네 모서리에 폴대를 세워 불꽃감지기를 설치, 미륵전 외부의 발화 시점 포착에 착오가 없어야 한다. 또한, 건물의 토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수막설비를 설치, 미륵전을 화재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체계적 소화·방재 시스템 도입은 선대가 물려준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고, 이는 곧 필자와 같은 소방방재학도의 몫이다. [글 이준영(3학년)·사진 오지환(1학년)]
순천향대 교수였던 양상현은 1910년 이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전 사진을 2014년 12월 13일자 불교신문에 소개한 바 있다. 건물 앞에는 나무들이 있고 좌우에는 전각이 있어 앞은 물론 좌우도 확 트여있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1918년 발행된 미국의 인류학자 Frederick Starr(1858~1933)의 저서 Korean Buddhism에 실린 미륵전의 사진은 추녀를 받치는 기둥이 없는 점만 지금과 다를 뿐 나머지는 동일하다.
현재의 불상은 이전의 불상이 1935년 3월 화재로 소실된 이후 조각가 김복진(1901~1940)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전의 불상 사진은 Korean Buddhism에 실려 있는데, 세 불상의 높이가 비슷하다. 이 불상에 관해 1928년 7월 11일자 동아일보는 ‘불상은 고대예술의 정화(精華)’라고 극찬하고 있는 반면 현재의 불상에 대해서는 수작이라는 평가와 범작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소방시설 조사로 찾은 11월 22일은 유난히도 맑은 날씨였다. 고개를 뒤젖혀 쳐다보니 미륵불이 3층의 광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환한 미소로 필자를 반기고 있었다. 건물에 사용된 모든 부재가 하나의 조각품으로 연결돼 공간을 형성하며 불상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필자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400여 년 전, 이렇다 할 목공 장비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저런 조화를 이뤄 냈을까.
반면, 불과 몇 년전에 설치한 내부의 CCTV·감지기 등은 너즈분하게 메달려 조화를 허뜨리고 있었다. 외부의 CCTV·감지기는 1층 처마에만 설치되어 감시체계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외부에서 불씨가 날아와 2층 벽이 연소하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종무소의 CCTV 모니터는 오래되고 해상도도 낮아 화면 속 물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식별하기 어려워 보였다.
하루빨리 네 모서리에 폴대를 세워 불꽃감지기를 설치, 미륵전 외부의 발화 시점 포착에 착오가 없어야 한다. 또한, 건물의 토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수막설비를 설치, 미륵전을 화재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체계적 소화·방재 시스템 도입은 선대가 물려준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고, 이는 곧 필자와 같은 소방방재학도의 몫이다. [글 이준영(3학년)·사진 오지환(1학년)]